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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색・실천・돌파
당 11기 3차 전원회의로부터 17기 3차 전원회의까지
2008년 10월 14일 08:32 【글자 크게 복원 작게】【메모】【프린트】【창닫기

당의 17기 3차 전원회의가 10월 9일 북경에서 개최되였다. 회의의 주요 의사일정은 농촌개혁발전을 추진할 문제를 연구하는것이였다.

개혁개방 30년간의 대도약, 대변혁, 대발전을 돌이켜보면 중국공산당은 중국특색의 사회주의길을 견지하고 사회주의시장경제 개혁방향을 견지하여 중국의 경제실력, 종합국력, 인민생활수준을 한단계 제고시켰다.

30년전 농촌개혁이 서막을 열었고 30년후 계속적으로 농촌개혁발전을 추진하는 이 우연한 일치는 력사의 필연성을 설명해주고있다.

실천중의 간고한 탐색 —경제건설은 줄곧 전당 전국의 사업중심이였으며 "사상해방, 실사구시"란 주선률이 관통되였다

중국 서남단에 위치한 운남성 로서시 삼대산 덕앙족향 출동과촌은 전국 22개 인구가 희소한 소수민족의 하나인 덕앙족의 집거지역이다. 30년간의 발전을 거쳐 이곳에서는 천지개벽의 변화가 일어났다. 촌민 리랍군은 이렇게 말한다. "이전에 우리 집에서는 돼지도 기르지 않았고 옥수수조차 심은적이 없었지만 지금 돼지사양수입만 한해에 3, 4000원이고 바나나재배수입도 1만 3000원에 달한다. 우리 부모들 세대에는 꿈조차 꿀수 없었던 일이다."

한개 촌의 변화에서 국가의 변천을 들여다볼수 있는 좋은 사례다.

30년전 중국공산당은 "개혁하지 않으면 출로가 없다"는 력사적인 선택을 하였다. 이때로부터 중국의 개혁사업은 사회주의시장경제를 건설하는 실천중에서 간고한 탐색을 시작했다.

1978년 12월에 소집된 당의 11기 3차 전원회의에서는 "사상해방, 실사구시"란 사상로선을 확립하고 모든 사업의 중점을 사회주의 현대화건설에 두는 전략결책을 채택했다.

당의 12차 대표대회는 "계획경제를 중심으로 시장조절을 보조로 하는" 원칙을 제출했고 그후 12기 3차 전원회의는 “중공중앙의 경제체제개혁에 관한 결정”을 통과하여 중국에서 실행하는것은 계획적인 상품경제임을 시사했다.

1987년 10월, 당의 13차 대표대회는 새로운 시장운행기제를 제기했으며 총제척으로 말하면 "국가가 시장을 조절하고 시장이 기업을 인도하는" 기제라고 볼수 있다.

당의 14차 대표대회는 더욱 명확하게 중국의 경제체제개혁의 목적은 사회주의시장경제를 건립하기 위한것이라고 제기했다. 그후 14기 3차전원회의에서는 “중공중앙의 사회주의시장경제체제를 건립할데 관한 결정”을 통과하면서 사회주의시장경제의 기본틀을 마련, 개혁을 심화하는 총체적인 청사진을 그렸으며 경제체제개혁은 전국면적인 총체추진의 새로운 단계에 들어섰다.

1997년 9월에 소집된 당의 15차 대표대회는 공동소유제를 주체로 기타 소유제가 공동발전하는 사회주의초급단계의 기본경제제도를 수립, 1998년 10월 15기 3차 전원회의는 “중공중앙의 농업과 농촌사업 중대문제에 관한 결정”을 통과했다. 이 결정은 당의 15차 대표대회에서 제출한 전략을 포치하는 중요한 회의였으며 중국의 농촌과 농촌사업의 새로운 국면을 개척하는데 심원한 의의를 갖고있다.

당의 16차 대표대회에서 초요사회를 전면적으로 건설할 분투목표와 완벽한 사회주의시장경제체제 건설전략을 제정한후 16기 3차전원회의에서는 “중공중앙의 사회주의시장경제체제를 완벽화할데 관한 결정”을 심사통과하였다. 결정은 사회주의시장경제체제를 완벽화할 목표, 임무, 지도사상과 원칙을 명확하게 제기하였으며 이를 기점으로 경제체제개혁은 완벽한 사회주의시장경제체제를 건설하는 새 장정을 시작했다.

당의 17차 대표대회는 미래 5년간 혹은 더욱 긴 한시기의 경제제체개혁 심화에 대한 중요한 포치를 하였으며 "사회주의시장경제체제면에서 취득한 중대한 진전을 완벽화할것과 사회주의시장경제법칙에 대한 인식을 심화하여 제도적으로 시장이 자원배치중에서의 기초작용역할을 충분히 발휘하게 할것"을 제기하였다.

당의 17기 3차 전원회의는 농촌 개혁과 발전의 추진을 주제로 하고있다. 이전에 중공중앙 정치국은 심각히 변화하는 국제정세로 말미암아 중국의 개혁발전은 중요한 단계에 진입하였다고 거듭 강조하였다. 우리는 중요한 전략적기회를 다잡고 초요사회를 전면건설할 웅대한 목표를 승리적으로 실현하고 사회주의현대화를 쾌속추진하기 위하여 자각적으로 사상을 계속 해방하고 개혁개방을 견지하며 과학적발전관을 추동하여 조화사회의 발전과 농촌개혁의 발전을 드팀없이 밀고나가야 할것이다.

중공중앙 당학교연구실 부주임 주천용은 이렇게 분석하였다. "시장경제와 사회주의제도의 결합은 맑스주의 경제리론의 창의이고 중국특색 사회주의의 중대한 돌파이며 중국경제발전이란 선박이 정확한 항선에 진입하게 하였다."

30년을 돌이켜보면 중국의 경제발전과 경제체제개혁의 궤도에는 "사상해방, 실사구시"의 흔적이 력력하게 새겨져있다.

국무원 발전연구중심 연구원 장립군은 "30년간 우리 당은 중국경제현대화, 중국경제체제개혁, 중국발전방식에 대한 인식에서 부단한 발전을 가져왔으며 심화, 성숙, 진화, 탐색을 거듭하고있다"고 지적한다.

탐색중에서의 용감한 실천 —사회생산력은 전례없는 해방과 발전을 가져왔고 경제의 쾌속적이고 온건한 발전의 새 국면을 형성했다

1978년, 중국의 국내생산총액은 3600여억원이였으나 2007년에 이르러 이 수치는 25조원으로 바뀌였다. 지금 중국에서 1주일에 창조하는 재부는 30년전 옹근 한해에 창조하는 재부와 맞먹는다.

"개혁개방은 11기 3차 전원회의에서 확립하였으며 실천중에서 부단히 심화되였다. 어떻게 되여 당시의 농촌 향진기업이 선두에 서서 개체경제를 할수 있었을가? 원인은 바로 실패하여도 지불하는 원가가 얼마 안되였기때문이다. " 중국기업의 불로송으로 불리우는 로관구는 개혁개방 30년의 관건고리를 견증할수 있는 인물이며 성공은 탐색중의 실천과 실천중의 심화에서 온다는 진리를 뼈저리게 느끼고있는 사람이다.

1978년, 로관구는 촌의 자그마한 농업기계생산공장에 대한 "전략조정"을 실시, 력량을 집중하여 자동차부품 전문업체로 탈바꿈하면서 전국시장으로 매진했다. 30년후 만향집단(万向集团)은 중국기업의 미래상을 보여주는 표본으로 되였다.

"실천이 증명하다싶이 시장작용이 매번 확대될 때마다 개혁의 발폭도 커졌으며 경제발전수준도 새로운 단계에 진입하였다." 남개대학 교수 리의의 말이다. 바로 개혁개방의 실천중에서 경제와 사회는 부단한 진보와 발전을 가져왔던것이다.

—회사제를 주요조직형식으로 하는 현대기업제도가 보급되였고 국유기업개혁이 심화되였으며 국유경제의 경쟁력, 통제력, 추동력이 강화되였다. 2002년부터 2007년까지 전국 국유기업의 판매수입은 8조 5300억원으로부터 18조원으로 뛰여올랐으며 년간 장성률은 16.1%, 리윤은 3786억원으로부터 1조 6200억원으로 장성하여 년간 장성률 33.7%를 실현했다.

—시장체제가 부단히 건전하게 되였으며 생산요소의 시장화정도가 온당하게 제고, 시장운행면에서 가격기제가 자원배치중에서 주도작용을 발휘하였다. 몇년간의 통계로 보면 사회소비품소매총액중 시장조절가격이 차지하는 비중이 언제나 95% 이상에 달하였다.

—거시경제운행에 대한 경험이 부단히 풍부하여졌다. 경제의 쾌속장성에서 나타나는 불안정, 불건전 요소에 대해 당중앙, 국무원에서는 경제, 법률과 필요한 행정수단으로 적당하게 조절하여 경제의 폭등폭락을 미연에 방지, 중국경제가 련속 몇년간 온당하게 발전하도록 담보하였다.

—수입분배면에서의 개혁강도가 강화되였다. 2002년부터 2006년까지 중국 도시주민 인당 가지배수입과 농민 인당 순수입은 년간장성률 9.2%와 6.2%를 기록하였다. 올해 상반년 전국 도시주민 인당 가지배수입은 8065원, 동기대비 14.4% 장성하였는데 가격요소를 배제하면 실제로 6.3% 장성한 셈이다. 2007년 중국농민 인당 순수입은 실제로 9.5% 장성하여 1985년이래 가장 큰 장성폭을 보였다.

—사회보장체계건설이 일층 강화되고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에 상응하는 사회보장제도의 틀이 초보적으로 형성되였다. 목전 우리 나라 도시에서는 보편적으로 도시주민최저생활보장제도를 건립하였고 농촌에서도 2007년상반기에 초보적으로 이 제도를 건립하였다. 2007년 말까지 전국적으로 기본양로보험과 기본의료보험에 참가한 인수는 각각 2억명 이상에 달하고 기본양로보험, 기본의료보험, 공상보험과 생육보험에 참가한 인수는 모두 그 전해에 비해 1300만명 이상이 증가했다.

지난 30년간 우리가 과감히 탐색하고 과감히 실천하면서 이루어낸 중국경제의 고속성장은 세계경제발전사상의 "중국기적"으로 불리우고있다.

1978년부터 2007년까지 중국경제는 년평균 9.88%의 속도로 성장했는바 이 시기 세계경제의 평균성장속도(3% 좌우)를 훨씬 초과했다. 경제총량은 세계 10위에서 4위로 뛰여올랐고 재정수입은 1132억원으로부터 5조1300억원으로 늘어났다. 중국도시주민 인당 가지배수입과 농촌주민 인당 순수입은 물가요소를 배제하고 각기 6배이상 증가했고 인민들의 생활은 먹고 입는것을 주로 따지던데로부터 거주조건과 교통수단을 추구하는 다층차소비에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30년간 "우리는 10여억 인구를 가진 발전도상의 대국을 빈곤에서 해탈시키고 현대화실현을 다그치는 중국식의 길을 성공적으로 걸어왔다." 국가발전개혁위원회 두영부주임이 한 말이다.

실천중에서 부단히 돌파— 30년간의 대발전을 돌이켜보면 농민들의 독창정신을 존중하여 시작한 농촌개혁과 발전행정은 세찬 기세를 막을수 없었고 농촌의 면모에는 력사적인 거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당의 17기 3차 전원회의가 열리기 전 중공중앙 총서기, 국가주석, 중앙군위 주석인 호금도동지는 안휘성에 가 농촌의 개혁발전정황을 고찰했다. 당시 그는 가정도급경영을 토대로 하고 통일경영과 분산경영을 결부하는 쌍층경영체제는 당의 농촌정책의 초석이라면서 현유의 토지도급관계를 안정시키고 장기적으로 변동시키지 말아야 할뿐만아니라 농민들에게 보다 충분하고 보다 보장이 있는 토지도급경영권을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30년전 안휘성 봉양현 소강촌에서는 18명의 농민이 토지도급제를 실시하기로 하고 "동맹서약"에 손도장을 찍었다. 그후 그들의 방식은 중국전역에서 료원의 불길로 타올랐다. 중앙당학교의 류해도교수는 "사실상 '인민공사'화를 한후에도 호도거리를 하려는 생각과 실험이 중단된적이 없었다. 안휘 소강촌에서 관건적인 한걸을 내디디자 이와 같은 개혁열정이 전국 농촌에서 순식간에 폭발했다"면서 우리 당은 농민들이 호도거리를 하려는 념원과 독창정신을 충분히 존중하고 대세에 순응하여 그번 개혁을 추진했다고 말했다.

안휘성에서부터 시작된 농촌개혁발전의 위대한 실천은 농촌의 사회생산력을 크게 해방시키고 발전시켰다.

2007년 전국의 농민 인당 순수입은 4140원에 달해 1978년에 비해 거의 30배 늘어났고 농촌의 절대빈곤인구는 2.5억명에서 1500만명으로 감소되였으며 량식총생산량은 개혁개방전의 3000억킬로그람에서 5000억킬로그람으로 늘어났다.

농촌의 개혁발전은 실천중에서 반드시 돌파를 가져와야 하며 부단히 돌파를 가져와야 한다.

새로운 시기에 들어선후 당중앙, 국무원에서는 집체림권제도개혁을 전면적으로 추진할데 관한 중대한 포치를 하고 5년 좌우의 시간을 리용해 재산권을 명확히 하고 각 호에 도급주는 개혁임무를 기본적으로 완수하기로 했다. 목전 이미 19개 성에서 이 개혁을 추진할데 관한 문건을 출범시키고 8.78억무의 림지를 도급주었는데 이는 집체림지 총면적의 34.5%를 차지하는셈이다. 농촌종합개혁시험사업도 질서있게 진행되고 농촌의무교육 "9년제보급"시에 진 빚을 청산하는 시험사업도 적극 추진되고있다…

우리 당은 농촌개혁에 대해 매우 큰 중시를 돌리고있다. 남개대학의 리이교수는 "당의 11기 3차 전원회의이후 우리 당은 농촌에서부터 개혁을 시작했다. 30년간 농촌과 농민문제는 줄곧 당과 국가의 사업에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있었다"고 말했다.

30년 동안 10개의 "1호문건"은 우리 당이 농민들을 이끌어 개혁실천을 한 력사궤적을 똑똑히 기록하고있다. "많이 주고 적게 가져가고 풀어놓아 살게 하며" "공업이 농업에 반포하고 도시가 농촌을 지지하며" "도시농촌발전을 통일적으로 계획"하는 등 시대적특징이 선명한 정책조치는 억만농민들에게 실익을 가져다주었다.

2006년 1월 1일, 2600년 동안이나 지속되여오던 농업세정책을 정식으로 페지하여 많이 가져가고 적게 주던 국면을 철저히 돌려세웠다. 농민부담을 경감시키는데로부터 각항 농업투입을 늘이기까지, 빚청산폭풍을 일으키는데로부터 토지징용제도, 호적제도개혁을 추진하기까지, 농촌경제발전을 지지하는데로부터 농촌의 교육, 위생, 문화 등 사회사업발전을 다그치기까지 각항 농촌개혁은 도시농촌경제사회의 조화적인 발전을 통일적으로 계획하려는 당중앙과 국무원의 결심과 신심을 남김없이 보여주었다.

국무원연구실의 리병곤부주임은 30년간 우리 나라 농촌개혁에서 취득한 가장 중요한 성과의 하나는 바로 지난 세기 80년대 중반부터 추진하기 시작한 시장화개혁이라면서 "시장화개혁은 농업농촌경제발전을 크게 추진했으며 우리 나라의 제반 경제발전 특히는 다종경제성분의 공동발전에서 중대한 견인역할을 놀았다"고 말했다.

30년전 중국의 성세호대한 개혁은 농촌에서부터 시작되였다. 30년후 농촌의 개혁발전은 또다시 새로운 력사기점에 서게 되였다. 국가발전개혁위원회 거시경제연구원의 상수택교수는 "초요사회전면건설의 중점은 농촌에 있으며 난점도 농촌에 있다"면서 당의 17기 3차 전원회의가 농촌의 개혁발전문제를 연구하고 추진하는것을 주요의제로 정한것은 의의가 중대하다고 말했다.

실천은 영원히 끝이 없고 개혁도 종점이 없다. 새로운 력사적기점에서 중국은 또다시 개혁개방의 돛을 올리고 번영발전의 찬란한 미래를 열어갈것이다(신화사).

  래원: 연변일보 (편집: 김홍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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