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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칼럼

중국인민은 일떠섰다(백년의 분투로정, 새로운 시작)

본사기자 최사흠 왕지봉

2021년 02월 08일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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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하늘과 흰 구름 아래에는 장엄하고 웅위한 선안문이 우뚝 솟아 있다.
시간을 거슬러 1949년 10월 1일 오후 3시경으로 돌아가보면 모택동동지는 천안문 성루우에 서서 세계를 향해 “중화인민공화국 중앙인민정부가 오늘 성립되였습니다!”라고 장엄하게 선포했다. 그 목소리는 중국인민이 일떠섰음을 세상에 알리고 세계를 놀라게 했으며 력사에 깊은 여운을 남겼다.

2019년 10월 1일, 중공중앙 총서기이며 국가주석이며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인 습근평은 중화인민공화국 창건 70주년 경축대회에서 중요연설을 발표하고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70년전 오늘 모택동동지는 이곳에서 세계를 향해 중화인민공화국의 창건을 장엄히 선포했으며 중국인민이 일떠섰음을 알렸다. 이 위대한 사건은 근대이래 100여년간 가난과 릉욕에 시달리던 중국의 비참한 운명을 완전히 바꾸고 중화민족을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는 장대한 길로 이끌었다.”

북경 서쪽 교외의 향산은 당시 중국공산당 중앙인민정부가 서백파에서 북경으로 이전하면서 처음으로 자리잡은 곳이다. 산기슭의 향산혁명기념관에는 ‘신중국의 초석—중공중앙이 향산에서’를 주제로 한 전시회를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전시청 정중앙에는 모택동이 개국대전에서 <중화인민공화국 중앙인민정부 공고>를 선독하는 사진이 큼지막하게 걸려 있었다. 모택동의 옆에 서있는 동필무는 모택동과 함께 제1차 당대회에 참가했을 뿐만 아니라 천안무 성루에 서서 개국대전에 참가한 유일한 지도자이다.

창당 초기50여명에 불과했던 중국공산당이 어떻게 짧디짧은 28년만에 전국 정권을 장악하고 새 중국을 창건할 수 있었는가?

1949년 5월 1일, 모택동은 홍콩에서 북상해 개국대전에 참가한 민주인사 류아자를 방문했다. 대화를 나누던 중 류아자는 공산당의 승리는 필연적인 추세였지만 이렇게 빨리 승리할 줄은 예상치 못했는데 공산당이 승리를 취득함에 있어서 어떤 묘책이 있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모주석은 인민의 지지가 곧 가장 큰 묘책이며 백만 대군이 장강을 건널 수 있었던 것은 인민의 지지가 없으면 성공할 수 없었음을 밝혔다.

중국인민의 행복을 도모하고 중화민족의 부흥을 도모하는 것은 중국공산당의 초심과 사명이다. 중국공산당은 아편전쟁 이후 근대중국이 반식민지반봉건사회로 전락하여 괴롭힘과 릉욕에 시달리던 속에서 탄생하였는바 시종 인민을 위하고 인민에 의지하는 것은 중국공산당이 규모가 작은 데서 큰 데로, 약한 데서 강한 데로 성장할 수 있었던 근본원인이다. 인민으로부터 얻은 무궁무진한 생명력의 원천이 있었기에 중국공산당은 인민을 억압하는 ‘세개의 큰 산’을 뒤엎고 중국혁명의 승리를 취득하며 새 중국을 창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올해는 새 중국 창건 72주년이 되는 해이며 중국공산당 창건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오늘날 중국의 종합실력과 국제경쟁력은 과거에 비해 더없이 강해졌지만 인민을 가장 중요한 자리에 놓는 것을 시종 중국공산당의 변함없는 신념으로 삼고 시간이 지날 수록 더 굳건하게 다질 것이다.

중국공산당의 뿌리와 혈맥은 모두 인민에게 있다. 모든 면에서 인민을 위하고 인민에 의거하는 것을 견지한다면 광범한 인민들을 긴밀히 단합시켜 중화민족의 새로운 휘황한 력사를 창조할 수 있을 것이다!

래원: 인민넷-조문판(편집: 장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