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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실기2] 김훈작가 문학창작 시작한 계기 및 부친 김철시인의 영

2011년 09월 29일 17:36【글자 크게 복원 작게】【메모】【프린트】【창닫기

김훈작가.

사회자: 김훈작가님은 무슨 계기로 언제부터 정식으로 문학창작의 길에 들어섰습니까?

김훈: 1972년에 지식청년 하향활동으로 한족농촌에 내려갔을 때에 낮에는 소사양을 하고 한가한 저녁에는 중국어로 일기와 시를 썼는데 저의 처녀작 "사양원의 노래"가 시집 《태양의 빛발아래》에 실려 연변출판사에서 발표되여 문단에 들어서게 되였고 1973년에 연변대학 조문학부에 입학하면서 작가의 꿈을 굳게 품고 노력해왔습니다.

사회자: 모두가 알다싶이 작가님의 부친은 우리 나라 저명한 조선족시인 김철이십니다. 김철시인은 작가님의 문학창작에 많은 영향을 줬다고 생각되는데 이 점에 대하여 말씀해주세요

김훈: 아버지는 제가 어렸을 때에 음악가로 양성시키려고 하여 저녁식사전에 항상 음계련습을 시켰지만 제가 음악에 완전히 흥취가 없는것을 보고 아버지는 그만둘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는 책보기를 좋아하는 저에게 책을 보관하는 상자 하나를 만들어줘 저로 하여금 책을 즐겨 열독하는 습관을 키우게 하였죠. 이것이 아버지가 저한테 준 제일 큰 영향이고 제가 나중에 작가로 될수 있는 바탕이기도 합니다. 다른 하나는 아버지가 저한테 문학에 대한 집념을 가슴깊이 심어주셨습니다. 지금은 비록 방송국의 기자, 역심생활을 하고있지만 항상 작가 김훈으로 생활할것입니다.

사회자: 작가님의 부친은 아주 많은 우수한 시들을 창작하신 시인이지만 반면에 작가님은 왜서 시를 쓰시지 않습니까?

김훈: 사실 저는 처녁작도 시이고 대학에서도 시를 썼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시풍격을 따라가다 보니까 많은 사람들이 제가 쓴 시를 아버지께서 대신하여 써주신것이라고 자주 말하니까 시에 대한 열정이 내려가면서 시창작을 단념해버렸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연길현 문공단의 전직작가로 있으면서 수많은 가사를 썼고 또 아버지가 전혀 쓰지않았던 연극을 썼는데 《두부장사》, 《시름거리 웃음거리》로 문학계의 긍정을 받았습니다. 연극의 성공도 시창작을 포기한 원인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래원: 인민넷 (편집: 김성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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