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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인민방송국 방송지도 박청죽 40년간의 방송생활 담론

소리로써 우리 민족 문화정품을 기록해

2011년 01월 27일 15:44【글자 크게 복원 작게】【메모】【프린트】【창닫기

중앙인민방송국 방송지도 박청죽과 사회자 김홍화.

1) 2007년에 중공중앙선전부에서 심사비준하는 중국방송업계의 최고상인 “골든마이크상”을 수여받은걸로 알고있습니다. 조선족방송인중 이런 큰 상은 받기로는 선생님이 처음이시죠? 기억을 되돌려 당시 수상상황에 대해 얘기해주세요.

박청죽: 아마 중국력사적으로 보면 처음으로 이런 상을 내오고 평선했는데 "제2차 중앙인민방송국 10대 아나운서" 평의에서 제가 “골든마이크상”을 수상한바 있습니다. 그때 수상소식을 들었을 때 격동되고 들먹이던 심정은 아마 이루 다 말할수가 없었습니다. 이 상은 중국 방송업계의 최고상으로서 제가 장장 40년간 방송을 하면서 이런 긍정을 받았기에 마음속으로 감개무량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국내 업계에서뿐만아니라 한국 등 외국에서도 반향이 컸습니다. 저는 이 상을 받고 자신에 대한 요구를 더 높여야 함을 깊이 느꼈습니다.

2) 고향에서 농사를 짓던 시골총각으로부터 방송아나운서와 인연을 맺기까지 선생님은 어떤 길을 걸어오셨나요?

박청죽: 1968년 10월에 저는 하향해서 농사를 짓기 시작했는데 그 와중에도 방송에 대한 애착이 너무 컸죠, 당시 상황을 보면 집안 경제상황이 어렵고 또 아나운서공부를 할 여건이 없다보니 집에서 볼품없는 반도체를 들으면서 연습했는데 소리효과가 좋지 않아 집밖 나무우에 매달아놓은 스피커가 유일한 선생이였습니다. 매일마다 아나운서의 억양을 따라하고 매일 신문을 넣고 다니면서 읽었는데 다른 사람들한테 독보를 해주군 하여 주위 사람들로부터 환영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노력을 아끼지 않다보니 결국 연변인민방송국에 아나운서로 지원하게 되였고 두번째해에 합격되여 어엿한 방송원으로 되였습니다. 그후에도 모든 면에서 게을리하지 않고 열심히 방송사업에 몰두했는데 주위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3)선생님은 1970년에 연변인민방송국 아나운서로 방송생활을 시작했는데 당시 물질적조건, 방송환경 등 면에서 어땠나요? 인터넷이 보급안됐던 당시 방송은 어떤 영향력을 가지고있었나요? (조선말라지오방송의 발전과정)

지금과 대비해볼 때 여러 방면에서 비교가 안되지요. 생활면에서 보면 먹는것이라고는 무우국과 강냉이밥, 때로는 옥수국수였습니다. 일주일에 두끼정도 입쌀이 섞인 강냉이밥과 고기를 넣은 남새료리를 먹을수 있었습니다. 업무환경으로부터 보면 당시 둔중한 “635”록음기계를 사용했는데 제가 새벽까지 연습하고나면 기계나사가 다 풀려 튕겨나올 정도로 엉망이 됩니다. 록음기계를 수리하는 분들도 제가 장시간 연습으로 인해 조성된것을 알고는 저를 리해해주고 지지해주었습니다.

또한 인터넷이 보급안됐던 당시 연변방송은 중국에서 가장 큰 조선어방송이였고 길림조선어방송, 흑룡강조선어방송, 국제방송보다 영향력이 컸기에 조선어방송계의 “큰집”이라고 할수 있었습니다. 조선어방송하는 방송국중 아침부터 저녁까지 온 하루 방송하는것은 연변방송밖에 없었는데 여기서 저는 많은 단련을 받았습니다.

4) 우수한 방송인이 되려면 자신의 독특한 방송풍격 확립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골든마이크상”을 타기까지 선생님이 방송사업과정에서 얻는 경험담을 듣고싶습니다. 현재 조선어 라지오방송이든 텔레비죤방송이든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점들이 있다면?

큰 경험은 따로 없습니다만 저는 방송일에 대해서 아주 단순한 마음을 가지고있습니다. 그때는 단지 모방성만으로도 방송을 잘한다고 평가받았는데 방송을 잘하는 선배를 모방하고 조선의 방송을 많이 배웠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듣고 열심히 베끼고 또 열심히 쓰면서 형편없던 수준이 대비속에서 제고되였습니다. 우수한 방송원은 결과가 중요한것이 아니라 과정이 중요하다고 보는데 부단히 분석하고 비교하면서 성장되는것입니다. 저는 때론 방송에서 느끼는바가 다른 사람에 비해 늦을 때도 있지만 강한 집착성을 가지고있기에 더욱 섬세해지고 성숙된 모습을 보일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배출되고있는 80년대후, 90년대후 세대들은 방송을 아주 잘하고있습니다. 이 세대는 열정이 있고 대담하고 접수능력도 강합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것은 방송을 알고 하는것이 중요합니다. 흉내와 답습도 중요하지만 그것은 오래가지 못하며 진정으로 터득하고 하는 방송이라야만 오래갈수 있습니다. 특히 방송원들에게는 한중교류, 중조교류가 많은데 풍격을 세움에 있어서 드팀이 없어야 하고 우리 자신의 주체를 지키고 문법적으로 허용된 규준범위내에서 구사하는 동시에 다른 방면의 우점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해야만 방송에서 문제가 최대한 적게 생길수 있습니다

5) 선생님은 《방송통론》 조문판과 중문판, 《우리민족 속담이야기》 출판발행에 이어《아리랑》, 《심청전》, 《춘향전》, 《흥부전》을 CD로 펴냈고 조선문학명작 장편소설 《림꺽정》CD도 출판 발행했다고 들었습니다. 더욱 놀라운것은 이 모든것들은 모두 선생님께서 자체로 편집, 감독하고 비용을 감당했다고 하던데 어떻게 되여 이런 일을 하게 되였는지 알고싶습니다?

지금 보면 우리 조선민족의 력사, 문화를 잘 모르는 분들이 많은데 저는 이것을 안타깝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생각한것이 제가 할수 있는것이라고는 자기 목청을 리용하는것밖에 없었기에 《우리민족 속담이야기》로부터 시작해서 문학정품이라고 할수 있는 7개 명작과 소설을 CD로 펴내게 되였습니다. 앞으로 《김삿갓이야기》를 비롯한 우리 민족 문화정수로 된 작품들, 그리고 《수호전》, 《삼국연의》와 같이 우리 민족에게 큰 영향을 준 중국고대명작들도 CD로 펴낼 생각입니다. 제가 이런 일은 하는것은 제가 제일 잘하고 우수해서가 아니라 저의 능력이 자라는만큼 경비를 가장 적게 들이고 문화정품도 소리로써 세상에 남길수 있다고 생각했기때문입니다. 아마 제가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이 꼭 했을 일입니다. 리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저로서는 영원한 문화자료를 남길수 있어서 기쁘고 후대들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로인층에서 이런 자료를 많이 수요하므로 제가 첫시작을 떼면 앞으로 꼭 이어서 계승해나갈 사람이 있고 좋은 전망이 있을것이라고 믿습니다.



이름: 박청죽(박일청)  
략력:1970년 10월 - 1978년 10월 연변인민방송국 아나운서
   1978년 11월 - 현재 중앙인민방송국 조선어 아나운서
학력:1981년 6월 - 1986년 6월 연변대학 조문학과 
   2002년 4월 - 2002년10월 조선 김일성종합대학 연수    
수상:2002년 저서 "방송통론" 중앙인민방송국 론문 특별상
   2007년 중국 골든마이크상
   2009년 중앙인민방송국 10대방송사회자상 외 중국방송사회자 론문평의에서 10여차 1,2등상

작품: 20여부의 TV다큐 "동북아의 금삼각 훈춘", "오늘의 길림", "오늘의 하북", "북경의 가을" 등 해설
   "조선말 속담 이야기" 책, CD, 테프 출판 발행  CD소설편 "이야기대왕", "황구연의 이야기집", "아리랑", "춘향전", "흥부전", "심청전", "림꺽정"등

중앙인민방송국 방송지도 박청죽.
인민넷 조문편집과 함께 기념사진.
래원: 인민넷 (편집: 김홍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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